민주주의란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주권 원리에 따라 국민의 정치적 합의에 바탕을 두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정치원리를 뜻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서구 대다수 국가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도가 결합한 대의민주주의를 정치체제의 조직원리로 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 각국의 역사적 경험과 필요에 의해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들은 부분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인 정치체제는 대의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하는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의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 비판하였던 소련과 동유럽으로 대표되던 사회주의국가들마저 1980년 말 거세게 몰아쳤던 민주화 바람 이후에 정치체제의 조직원리를 직접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로 대체하였다는 사실은 그 평가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대의민주주의가 세계에서 아직도 가장 보편적인 통치원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대의민주주의 나름대로 제도적 결함과 운용의 문제점은 각국에서 한결같이 지적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하겠다. 이것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내지 도전이라는 용어로 지칭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대표의 실패' 내지 '대표의 왜곡' 또는 '대포의 타락'을 통해서 국민과 대표 사이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항상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것은 다름 아닌 직접 민주주의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의 직접 결정과 대표에 대한 직접적 통제라 할 것이다.
무릇 어떤 정치제도도 시대와 환경을 떠나서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은 물론이거니와 대의민주주의가 가진 '대표의 실패'라는 문제점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그 어느 시대에서보다 그 정도와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즉, 현대에 들어서 달라진 정치환경은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경제, 사회,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구의 증가, 보통교육의 확대로 인한 높은 교육 수준과 이에 따른 정치에 대한 관심과도, TV 등 대중매체의 발달과 언론기관의 영향력 증대, 개인용 컴퓨터의 보편화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화 사회의 도래는 현대정치환경을 새롭게 변모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민주주의에서 아테네식의 직접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물리적 조건과 제약들은 점점 상대화되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자연히 왜 아직도 문제가 많은 대의민주주의를 고수하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하였으며 이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을 원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는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 정당민주주의의 미성숙 내지 취약성에서 그 위기의 징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즉, 정당은 모름지기 국민과 대표 사이를 이어주는 중 개체로서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은 그러한 지위와 기능보다는 국민들에게 끊임없는 비리와 부패의 온상으로 여겨진바 또한 사실이다. 이런 한국 정당민주주의의 미발달 내지 변질을 많이들 지적하거니와 정당의 성립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관제 여 당적 모습에서는 직접민주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대표적인 정당 내부 행사라 할 수 있는 후보자 선출과정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이른바 '국민참여경선'이 실시됨과 동시에 정당 위주의 선거운동에서 벗어나 '노사모'로 대표되는 새로운 선거운동 형태는 정당민주주의의 또 다른 변화와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서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기는 바로 대통령 탄핵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와 심판에서 보여준 일련의 정치과정들은 우리 대의기구가 가진 정치적 능력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적 위기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탄핵 이후 계속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의회를 배제하는 듯한 대국민 호소적 대통령의 정치행태는 우리 대의민주주의의 변질한 모습이라 하겠다.
사실 대의민주주의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선거를 통해서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을 대표하는 대표기관을 선출한 후, 기본적으로 이성적 다수결을 통하여 국가의사를 결정하게 하는 정치원리를 뜻한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의 민주성은 선거권의 확대를 통한 평등한 정치적 지위와 선택권에 있다. 이처럼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자유로운 동의와 선택을 통해서 권력의 형성과 교체를 가능하게 하여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공무담임권 및 참정권의 보장이 필요하며,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선거를 위해서 언론 및 표현 그리고 집회, 결사의 자유는 중요한 정치적 기본권이 된다. 선거를 통해서 대표를 선출한 대의민주주의는 그 이후 정당과 여론을 통해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의회에 수렴한 후 이에 대한 설득과 토론, 그리고 이성적 다수결에 의해서 국가의사를 결정한다. 다수결에 의한 국가의사는 설득과 토론의 과정을 거치기에 동의와 자발적인 승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의사가 결정되는 한편 국민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대표에 의한 국민 의사의 여과(filter)' 작용이다.
국가 의사결정에 있어서 대의민주주의의 최대장점은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즉, 매디슨(J. Madison)의 주장과 같이 대의민주주의는 대표라는 최선의 사람(best men)에 의해서 토론과 결정이 주도된다는 점에서 국민 의사에 대한 여과 효과가 이루어지는 측면에 주목해야겠다. 이와 같은 여과 작용은 국민의 경험적 의사에 있어 그 바탕을 이루는 편견과 격정, 그리고 충동 등에 대한 완충과 중화의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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