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경제적 대표성
1950년대 이후 배심제도의 여러 측면, 특히 그 기능에 관해서는 사회과학 전반의 학제적 연구가 다양한 여러 접근방법에 의해 시도되어 왔음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제도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며, 지적할 수 있는 여러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민사사건에서의 활용도 또한 해마다 높아가고 있으며 결코 줄고 있지는 않다. 1950년대 크게 대두된 바 있었던 폐지론은 오늘날 거의 설득력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오히려 제도적 폐단을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시도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물론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93년 '로드니 킹' 사건평결과 뒤이은 LA 폭동을 계기로 또다시 그 폐지론 내지는 축소론이 대두된 바 있다.
그러면 이 가운데 전문법조인들은 어떠한 평가를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카르멘과 자이 셀(Kalven and Zeisel)' 연구팀은 3,500명의 미국 하급법원 판사들을 대상으로 경험적 연구를 수행하였던바 그 결과는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한다. 즉 전체 법관의 75%는 대체로 현재의 배심제를 지지하고 있음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판사 대상의 조사에 따르더라도 그 결과는 기본적으로 다름이 없다.
이는 곧 배심제도가 사법 과정에서 담당하는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반영이며 그것이 특히 전문가 및 일반인에 의해 기본적으로 동일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미인의 민주주의적 신념의 사법 절차상의 발현이라는 성격으로도 규정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측면은 평결의 일반적 타당성에 대한 결과적 평결의 문제 못지않게 그러한 평결 형성과정에서 민주주의적 가치의 구현이라 할 것이다. 배심의 구성원 개개인의 의사가 평결을 위한 심의(deliberation)과정에서 얼마만큼 평등적으로 실현되느냐 하는 과제는 중요하다 하겠다. 그리고 이보다 더 근원적으로 어떠한 방식에 의하여 배심원 후보가 선발되고 최종적으로 구성된 배심이 인구분포의 구조적 연관에서나 특히 사회, 경제적 시각에서 해당 지역사회에 대하여 갖는 대표성의 적정성이라는 문제일 것이다. 사실 관할 내의 수많은 인구로부터 추출된 12명이라는 극소수의 집단에 그러한 적정한 대표성(representativeness)의 실현이란 지난한 과제일 것이기 때문이며, 사회, 경제적 배경에 있어 이질성(heterogeneity)으로 대표될 배심에 이런 요소들의 합리적인 배분이란 예비심문 절차상의 요건과도 조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배심제도의 기원과 그 역사적 발전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러하거니와 배심에 의한 재판의 청구권을 헌법상 보장한 제도적 발상의 기반에는 소송당사자의 동료(peers)에 의한 심판이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면서 더 나은 장치라는 신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심재판을 통해 지향하려 하는 현대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밝힌 근거는 그리 많지 않다.
'머피(Murphy)' 대법관은 '스미스 대 텍사스(Smith v. Texas)' 사건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민, 형사사건에서 배심에 의한 재판이라는 미국적 전통은 필연적으로 지역사회의 단면으로부터 추출된 공정한 배심을 상정하고 있다. 이는 곧 배심원 후보들이 경제적, 인종적, 정치적 및 지리적 기준에 따라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배제됨이 없이 선발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어야 한다."
이 같은 배심 구성상의 기준과 그 요청은 그 뒤의 판례들에 의해서 적용되어 왔고 또 연방헌법 증보 제14조의 해석을 통해 연방뿐 아니라 각 주의 재판 절차상 충족되어야 할 요건으로 되어 왔었다.
그런데 1950년대에 들어오자 대표적으로 '핸드(Hand)' 판사는 배심의 대표성을 확보를 위한 기준이 실제로 얼마만큼 충족되고 또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즉 미성년자, 노약자, 심신장애자, 교육 기회 상실자 등은 차별적으로 배심 구성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관할 내 지역사회의 단면적 반영으로서 배심, 그리고 그 대표성은 실제로 많은 경우 외면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더구나 이 같은 대표성 결여의 문제는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여 급기야는 그 자체 위헌소송의 대상이 되는 사례가 속출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즉 인종적, 연령상, 그리고 성별 상의 대표성 결여뿐만 아니라 더 시각을 넓히면 사회, 경제적인 계층적 편파성(class prejudices)이 기능적으로 재판의 결과를 특정한 방향으로 제약한다는 점이다.
한 실증적 연구 결과에 따를 때 예컨대 흑인은 인구 구조상 차지하는 비율의 41%밖에 배심에 첨가될 뿐이라든지, 통계적으로 여성인구가 54%임에도 배심원 구성상 42% 미만밖에 안 된다거나, 20시~29세 사이의 인구는 전체의 21%이나 배심원 통계에서는 1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흑인, 여성, 연소 청년 등의 계층은 그만큼 비례적으로 사법 절차상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이 된다.
기타 여러 사회, 경제적 지표를 활용하여 배심의 대표성 문제에 접근해 보려는 시도는 많았으며 그 결과로서 제시되는 개선 방향에서도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이를테면 사회, 경제적 기반의 둔 지표로서 교육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의무교육 연한에도 미달하는 하등 교육인구는 실제에 있어 형사절차의 대상인 구로서는 적지 않으나 배심원 후보로는 거의 소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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